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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안녕히...그리고 네고는 고마웠어요

질문: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돌고래).
“소모적 당파싸움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정신으로 난국을 타개하자”(여당의원).
 “오만하고 독선적인 지구멸망계획 원천봉쇄를 위한 장외투쟁을 전개하겠다!”(야당대변인).
“숨겨놓은 나머지 애인들과 떳떳한 연애를 즐길테다!”(골프황제 호림선생).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무언가 크리에이티브하고 그럴 듯한 답을 생각하겠지? 나의 대답은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오! 정말? 큰일났네, 완료보고 해야 하는데!”

 연말을 거치며 제작비 정산때문에 꽤나 분주했던 관계로 2010년의 첫 머리는 완료보고라 불리는 ‘정산’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작비와 관련된 정산과정을 일컬어 우린 완료보고라고 말한다. 신입사원 때 수북히 쌓인 정산서류를 해치우기 위해 휴일근무를 했던 경험이 한두번 쯤은 있을것이다. 평소에 틈틈이 하면 수월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 월말에 몰아쳐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 텅빈 사무실에서 계산기 두드려 가며 하는 서류작업은 밀린 탐구생활만큼이나 작성하는 이를 질리게 한다. 설겆이 좋아하는 사람 못봤고, 밀린 방청소 하며 가슴 설레는 사람 없는 법.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 라는 맘이 울컥 치솟아 자리에서 몇번씩 일어나지만, 짜장면을 먹든, 만한전석을 먹든간에 누군가는 그릇을 치워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개인적 취향에 따르면, 사실 ‘완료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는 그리 고역은 아니다. 볼펜으로 사각거리며 써내려가는 손맛도 있거니와 이렇게 또 하나의 ‘껀’이 비로소 마무리 되었구나 하는 기분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손맛도, 홀가분한 맘도 모든 게 깔끔하게 준비되어야 느낄 수 있는 법. 진정한 완료보고의 고단함은 한장 한장 서류를 모으는 과정에 있다. 어렵사리 꺼낸 말에 오히려 미안할 정도로 흔쾌히 수락해 줄 때도 있는가 하면 ‘네고’의 ‘네’자도 꺼내지 못한채 조용히 ‘네...’하며 수화기를 내릴 때는 가슴에 돌이 들어찬 듯 답답해진다. 일한만큼 받으면 되고, 약속한 만큼 주면되는 명쾌한 논리이건만 현실은 그렇게 맘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디어 하나 더 내야 할 시간에 하루종일 전화통 붇잡고 뭐하는 짓인지, 연필깍이도 아닌데 무턱대고 깍으면 앞으로 어떻게 일하란 말이야?” 반면 또 다른 누구도 말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돈을 빼고 생각할 수 있어? 그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한정된 범위내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단 말이지...”

 제작비 걱정없이 원하는 대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굉장한 능력자이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모든 업에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돈’이란 것은 ‘가능성’과 ‘한계’라는 상반된 의미가 동시에 담겨져있는 그리 만만치 않은 재료이다. 이 재료를 누가 맛나게 조리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팀의, 조직의 역량이다. 하루 종일 정산서류 작성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 시간만큼은 내게 주어진 패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물론 서류작성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단축시켜 나가는 만큼 치밀해 졌다는 증거이니까. ‘완료보고서’ 작성과정을 굳이 비유하자면 ‘마무리의 종합예술’이요, ‘상호간의 격차를 최소화시키는 회유와 호소에 기반한 치밀한 대인관계의 기초과정’이라 감히 말 할 수 있다. ‘완료보고서‘ 하나 쓰면서 별  이상한 소리 한다며 공감 안하실 분도 계시지만 이정도의 의미부여도 없다면 그동안 흘려보낸 ‘잡자켓’들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기에...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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