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에서 겸손함을 배우듯 우린 익으면 익을수록 파릇 파릇해지는 브로콜리에게서 연차가 늘어나는 만큼 더 참신해져야 하는 광고인의 숙명을 떠올려야 할 지 모른다.
‘We Love New’ 를 아시는지? 우리회사 제작본부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슬로건이다. 누군가 내게 광고의 본질을 물어본다면 말해주기 난감해 머뭇거리겠지만, 광고라는 업(業)에서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엔 ‘새로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움’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광고주에게 보여줄 안을 결정하기전 회의석상에서 “안이 새롭지 않아” 라는 말은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며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에 크리에이터는 가장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음, 다 좋은데 뭐 새로운 것 없을까?” 라는 말을 만약 당신의 팀장께서 하셨다면 지금 당장 전화를 들고 집에 연락하시길 바란다. 오늘 좀 늦을 것 같다고 말이다. 몇년전 회의를 하는데 그럴듯한 뮤직비디오 한편을 통째로 들고 와서 안을 설명하며 이렇게 찍자고 말해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는 얼토당토않게 ‘패더디’란 말을 해버렸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대놓고 베꼈다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 고른 어휘가 고작 ‘패러디’란다. 문학적 표현에서 특정 작가의 약점이나 상투성을 강조해보이기 위해 기법을 흉내내거나 익살스럽게 바꾸는 것을 패러디라고 말하는데 그 묘미는 원작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화에 있겠다. 하지만 그 당시 박아트의 머리속엔 용어의 정확한 정의도 없을 뿐더러 ‘자기화’란 중요 개념이 쏙 빠져있었으니 이정도면 무식함이 절정에 오른 경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시간에 쫓겨 당장 처리(!)해야할 일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어떻게 매번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을 들고 올 수 있냐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기 급급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때면 가장 먼저 마우스와 키보드를 찾아 책상앞에 뿌리를 내려버린다. 남들이 보지 못한 자료를 남이 보기전에 재빨리 찾아내고자 부지런히 인터넷을 떠돌고 새로운 표현을 위해 몇 권의 아카이브를 끄적거리며, 하드가 터져 나가도록 새로움을 유투브에서 부지런히 다운받는다. 언제부턴가 레퍼런스란 이름의 남의 생각을 마치 내것인양 그럴 듯하게 포장하며 원작과 가장 비슷하면서 남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럴 듯하게 뜯어고치는 그 능력을 내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다. 새로움이 없으면 말라버리는 세상에서 한가지 방법밖에 모르는 필라멘트가 되어 부질없는 복제를 반복하고 반복하다 그렇게 타들어가 버린다.
자신의 생각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손끝의 감각을 아직 신뢰하는 모험가적 크리에이터들은 여전히 NEW라는 어휘가 던지는 결투신청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반면 누군가는 NEW를 인터넷에서 편리하게 검색하며 혹은 다른이의 결과물에서 아무런 고민없이 구한다. 그들에겐 새로움이란 말은 더이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관습적인 일,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의 내모습과도 흡사한 그들의 새로움이 그런 행위를 되풀이 하는 말에 불과하다면 난 절대로 새롭고 싶지 않다.
‘We Love New’ 를 아시는지? 우리회사 제작본부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슬로건이다. 누군가 내게 광고의 본질을 물어본다면 말해주기 난감해 머뭇거리겠지만, 광고라는 업(業)에서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엔 ‘새로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움’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광고주에게 보여줄 안을 결정하기전 회의석상에서 “안이 새롭지 않아” 라는 말은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며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에 크리에이터는 가장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음, 다 좋은데 뭐 새로운 것 없을까?” 라는 말을 만약 당신의 팀장께서 하셨다면 지금 당장 전화를 들고 집에 연락하시길 바란다. 오늘 좀 늦을 것 같다고 말이다. 몇년전 회의를 하는데 그럴듯한 뮤직비디오 한편을 통째로 들고 와서 안을 설명하며 이렇게 찍자고 말해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는 얼토당토않게 ‘패더디’란 말을 해버렸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대놓고 베꼈다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 고른 어휘가 고작 ‘패러디’란다. 문학적 표현에서 특정 작가의 약점이나 상투성을 강조해보이기 위해 기법을 흉내내거나 익살스럽게 바꾸는 것을 패러디라고 말하는데 그 묘미는 원작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화에 있겠다. 하지만 그 당시 박아트의 머리속엔 용어의 정확한 정의도 없을 뿐더러 ‘자기화’란 중요 개념이 쏙 빠져있었으니 이정도면 무식함이 절정에 오른 경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시간에 쫓겨 당장 처리(!)해야할 일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어떻게 매번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을 들고 올 수 있냐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기 급급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때면 가장 먼저 마우스와 키보드를 찾아 책상앞에 뿌리를 내려버린다. 남들이 보지 못한 자료를 남이 보기전에 재빨리 찾아내고자 부지런히 인터넷을 떠돌고 새로운 표현을 위해 몇 권의 아카이브를 끄적거리며, 하드가 터져 나가도록 새로움을 유투브에서 부지런히 다운받는다. 언제부턴가 레퍼런스란 이름의 남의 생각을 마치 내것인양 그럴 듯하게 포장하며 원작과 가장 비슷하면서 남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럴 듯하게 뜯어고치는 그 능력을 내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다. 새로움이 없으면 말라버리는 세상에서 한가지 방법밖에 모르는 필라멘트가 되어 부질없는 복제를 반복하고 반복하다 그렇게 타들어가 버린다.
자신의 생각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손끝의 감각을 아직 신뢰하는 모험가적 크리에이터들은 여전히 NEW라는 어휘가 던지는 결투신청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반면 누군가는 NEW를 인터넷에서 편리하게 검색하며 혹은 다른이의 결과물에서 아무런 고민없이 구한다. 그들에겐 새로움이란 말은 더이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관습적인 일,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의 내모습과도 흡사한 그들의 새로움이 그런 행위를 되풀이 하는 말에 불과하다면 난 절대로 새롭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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