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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밍기적인간의 불규칙한 퇴근시간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 란 책에 보면 시간이란 괴물에 굴복하지 않고 그 괴물을 쪼개고 쪼개 자신의 것으로 만든 류비세프란 평범한 인물이 나온다. 시간을 대함에 있어 강박증에 가깝다고 할 만치의 ‘효율성’에 집착하는 태도로 자신이 소비한 모든 시간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록한 류비세프,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까 싶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태도를 지닌 그들은 우리곁에 분명히 있다. 나는그런 사람을 ‘빠릿빠릿’한 인간이라 부르며 숭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신속한 업무처리능력을 직장인의 훌륭한 덕목으로 치는 요즘 시기에 절대 야근없이 Business is Not a Busyness 라는 철칙을 지켜가는 시간관리의 고수들이 있는가 하면 야근은 ‘숙명’이요, 칼퇴근은 ‘혁명’이라 여기는 나같은 하수도 있으니 그런 이를 가르켜 ‘밍기적 인간’이라고 한다.

 작년 봄, 출석하는 교회에서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하는 8주짜리 주말프로그램에  참여한적이 있다. 마지막 날 참가자와 교사들이 함께 교육관련 간담회를 진행하는데 간담회가 끝나고 가족마다 돌아가며 기도제목을 말하고 그에 대해 대표교사가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집에선 내 아들의 모친인 아내가 수십가지 기도거리를 토해낸다. 수많은 걱정거리의 마지막에-진짜 제일 마지막- 가장이자 우리나라 광고산업 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내가 일정한 퇴근시간을 갖게 해주십사라고 말을 했는데 기도자가 이를 잘못 알아들었는지 “ ...그리고 우리 박집사님에게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일정한 직업을 갖을 수 있게 해주시며...” 라며 기도하는게 아닌가? 난 아내를 잠시 흘겨보았다.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면 일정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란 인간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일정한 직업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인간으로 자리잡는 순간이다. 이 모든게 그놈의 일정치 않은 퇴근시간 때문이다. 위의 사례 말고도 불규칙한 퇴근시간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는 많이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에게 내오는 육개장마냥 천편일률적인 인간관계도 그중 하나다. 밍기적 인생은 퇴근이 일정치 않으니 약속이 쉽지않고 비슷한 패턴을 갖고있는 사람을 찾다보면 회사동료 아니면 경쟁 대행사 친구들만 만나게 된다. 술집만 바꿔 같은 멤버로 일주일에 3번 만나는 경우도 있다보니 대화내용도 뻔해서 광고의, 광고에 의한 광고를 위한 이야기 일색이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듣는다면 그럴 듯 하게 들릴게다.

17시 48분에 걸려오는 공포의 업무전화를 받은 후  빠릿빠릿한 팀선배는 슬픔과 짜증이 혼재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24시간 광고 편의점 직원이라고 말한적 있다. 당시 광고 꿈나무이던 나로서는 썩 맘에 들지 않는 말이었지만 당시 선배가 말하던 묘하게 쓸쓸한 분위기만큼은 아직도 기억난다. 빠릿빠릿한 인간들에게도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일까? 시간을 쪼개고 쪼개 만든 24시간이 온전히 내것일 수 없다면 뭔가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일이 나를 사랑해 떠나기 싫어 내곁에 몇시간 더 머물길 원한다는 식의 긍정적 태도라든지...병속의 절반남은 물을 보며... 여기서 갑자기 왜 뻔한 비유에 당연하고 식상하기 그지없는 말이냐고? 모르겠다. 시간에 끌려다녀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는 밍기적 인사가 쓴 밍기적 글의 밍기적 긍정론이겠거니 생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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