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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천재 VS 천재

부끄럽지만, 글을 쓰다보니 늘어난 게 하나 있다. 문장력도, 아니요 사고력도 아닌 ‘자기 비하’ 능력이다.

 

매번 내 부족한 면을 드러내 가면서 글감을 찾다보니 ‘나’를 팔아 글쓰는 재주엔 도가 튼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각한 날은 나의 게으름을 통해 반성한 후  치열하게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영웅적으로 부각시킨 후 발바닥에 땀나도록 살아야만 하는 광고인의 숙명을 체념한듯 읖조리며 글맺음을 하는 방식. 뭐 이런식이다. 이번달도 어김없이 글감을 찾기위해 자기비하에 자기비하를 거듭한  후 내린 결론은 ‘난 너무 천재적이지 않다!’라는 대책없는 생각이다. 기도 안차겠지만 잘 들어보시라. 누구는 크리에이티브 컨셉워드를 기가 막하게 뽑아낸다. 모카피는 논리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포도씨 오일을 바른듯한 유들유들한 회의 진행의 모팀장님은 ‘분위기 만점회의’의 천재다. 우리 팀장님? 물론 천재적이다. 그는 CD라서 여러분야의 천재다. 그 중 몇개를 들면, 그분은 벽에 붙어있는 썸내일과 대화를 하실 수 있다. 썸내일과의 교감을 통해 그들의 의견을 반영,  줄서고 싶어하는 곳에 세워주는 능력 - 일명 ‘나래비’-을 하늘이 내려주셨으며, 가망없는 녀석(별로인 아이디어)을 일으켜서 영양제 놓고 밤새 품속에 안아주시다 다음날 아침 짜잔! 하고 A안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천재적인 역량을 갖고 계시다.  이것 말고도 광고주를 웃음짓게 하는데 천재, 웃음 빵 터지는 아이디어의 천재등 온갖 천재들이 득시글대는 내주위는 호나우딩요가 타고 온 외계인 함선같은 곳이다. 참 무서운 곳이다.


 ‘무서움’이란 말로 표현했지만 정체모를 이 감정의 좌표는 ‘부러움’과 ‘시샘’의 중간 언저리쯤에 있는 듯 하다. 멋드러진 광고를 처음 접한 후 넋놓고 ‘좋다~’라고 생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정도 쯤이야~’라고 급하게 부러움의 시선을 거두어 버리는 너무나 비(非)천재적이다 모습의 박아트의 비애. 아, 신이시여! 왜 그대는 그 캠페인을 낳고 나를 또 낳으셨나이까?  천재에 대한 내용을 빌어 마츠모토 타이요라는 천재 만화가에 대해 잠시 말해볼까 한다. 각자의 기준에 맞춰 첫 손으로 뽑는 최고의 만화가는 각각이겠지만, 마츠모토 타이요는 우리의 일반적 안목으로 봤을 때 두루 인정할 만 한 천재임이 분명하다. 주옥같은 대사, 놀라운 화면구성은 기본이요, 옆에서 구연동화 들려주는 빠져드게 하는 스토리 흡인력과 상식을 깨는 점까지, 이놈봐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핑퐁’엔 천재적 소질의  어린 탁구선수 두명이 나온다. 탁구좀 친다는 어른 쯤은 가볍게 제치는 탁구천재와 그의 스매싱 파트너인 또 다른 천재 (반대편에 서서 치기 좋은 곳으로 다시 리턴해주는) 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천재들간의 승패야 만화책을 보면 알게 될 일이고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의 천재성이 활활 타오르던 ‘그 시절’의 시간적 위치와 의미다. 천재성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보다 ‘얼마동안’ 지속되느냐가 중요하며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빵하고 터지느냐 하는 시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와 ‘얼마나’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쳐도, ‘언제’라는 것은 그 누구도 손쓸 도리가 없이 주어져야만 하는 내게 속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하늘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성공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우연과 운을 먹고 자란다. 성공한 가수이자 기획자인 박진영은 그의 삶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지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재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접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매사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자기비하도 필요하다.) 자신의 장점을 갈고 닦는 데에는 주눅든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국보급 투수 선동렬처럼 임해야 하지만 그 장점이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에는 나이먹은 패전처리 투수같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겠다. 감독이라는 신의 결정에 따라 마운드에서 지금 던지는 이공이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투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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