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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번잡한 아트의 글짓기

 귀한 시간을 내어 글을 봐주시는 분들, 그리고 그분들의 고마운 마음 씀씀이에 우선 감사드린다. 매번 힘들게‘X줄 퐈이어’를 불사르며 땀구멍 하나에 한글자씩 쥐어짜내는 주제에, 좋은 소리만 듣고싶은 모양이다. 나라는 인자가 귀한지면을 할애받아 제일기획 사보에 한꼭지를 맡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시는 분도 많지만, 정작 나는 사보만 들고 있는 사람만 봐도, 그이가 내글을 봐주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산다. 아무리 봐도 글쓰기에 있어 박프로는 볼품없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지금 써내고 있는 이것도 글이랍시고 쿨한 척 하지만 귀는 쓸데없이 민감하다. 여러반응에 솔깃하고 반응하는 맘은 내가 느끼기에도 “제발, 참아줘”수준이다. 그런 다양한 반응 중 드디어 10번째를 채운 말이 있다. 바로 문체가 만연체란다. 10번이나 듣고도 좀체 변함없이 그대로다. 만연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아직 재주가 미천하여 그러니 이해해주십사 읍소를 한다. 그런말을 듣고 뒤돌아서면 나도 김훈 선생처럼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의 반이라도 익히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인다. 하지만 내가 흉내낸 김훈체는 바보같다. 말을 전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생각은 마디 마디 잘리는 듯 하고 글짓기의 발걸음은 ‘나아가려 했으나 나아가지 못했고 나아가지 못했으니 나갈 도리가 없다....’의도적으로 짧게 쓰기위해 무조건 마침표를 많이 찍으며 써본 적 도 있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도 않다. 정제되거나 단란한 느낌이 없이 간결체는 커녕 분절체에 가까운 서걱거림이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던 지난 글짓기와는 달리 이번엔 그냥 편하게 써보기로 했다. 여전히 문장은 늘어지고 생각은 넘쳤다. 생각을 단련시키지 못하는 손놀림은 넘치는 정보량에 버벅거린다. 그래도 그냥 간다. 번잡스러운 생각. 우유부단함과 조바심을 동반한 평소의 나를 고스란히 안고서 말이다. 덕분에 글쓰는 사람은 편해졌다. 그리고 읽는 사람은 다시 불편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에 한소리 더들었다. 11번째 말씀.“에이...만연체더라...”욱하는 맘에 이렇게 책상에 앉은 건 아니다. 생각해보니 사실 만연체가 그리 용납못할 그런 것은 아닌 듯 하다. 문체가 글의 성격이란 말인데 놓인 글이 만연체든 간결한 문체이든 그것은 글을 쓰는 이의 그러한 성향일 뿐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닌 듯 해서 말이다. 길게 늘어진 문장속 감정의 과잉은 세련되지 못하다지만 다르게 보면 글짓는 이의 세심함이 묻어있기도 하다. 짧고 단순한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다. 그러나 누구는 공백에서 친절하지 못함을 느낄 수도 있다. 맞고 틀림으로 말하기엔 가치 중립적인 요소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짧고 간략한 미니멀리즘의 최전선에 서있다. 광고의 짧은 문장과 신문의 헤드라인에 길들여진 눈은 딱 0.4초만큼의 관심만 허용한다. 우린 모든 것을 15초안에 표현해야 하며, 140자안에 온몸의 세포 흐름을 압축해서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압축하고 잘라내고, 글쓰는 지금도 Cut & Paste하고 빨리 원고를 마친 후 ZIP으로 돌아갈 마음뿐이다.

 다른이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란 타인과의 만남이기 전에 나와의 솔직한 대면이다. 맘의 흐름을 거스르는 순간 ‘꼬임’은 시작이다. 말과 글은 생각의 날것에 가깝다. 머리는 분주히 감각기관을 순회하며 글로 말로 가끔은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나보고 짧게 써보라고 말씀해주신 분들의 배려는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내안의 번잡스러움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 그덕분에 복잡하지 않기로 했다. 체계적이지 않은 내머리를 단숨에 뜯어고치지 말자. 버리지 못할 만연체라면 천천히 바꿔보자. 그러다 보면 나의 글짓기도 담백해지고 아이디어의 번잡함도 사라지겠지. 생각이 말과 글을 낳기도 하지만 말과 글이 내생각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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