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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대담(對談)

사회자: 여러분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여러분의 노력이 두둑한 보너스로 보답받길 기대하면서, 오늘은‘아트’라는 이름으로 불철주야,주구장창,고마쌔리...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왼쪽에는 ‘최고의 디자인은 누가 봐도 예쁜 것’이라 믿고 계시는 끌의 대가 박아트님. 그리고 반대편엔 ‘미래는 아카이브엔 없더라’라는 책을 쓰신 박차장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박아트님부터...

박아트(이하‘아’): 요즘 친구들은‘아트디렉터’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죠? 디자이너가 창피한가? 하지만 전 디자이너란 말을 사랑합니다. 업체란 곳에서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몇마디 던지고는 자기 작품입네 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제가 디자이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박차장(이차 ‘차’): 저도 유능한 디렉터이기 전에 자랑스러운 디자이너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벌건 눈으로 밤새 모니터만 봐야 한다면 저 디자이너 안할랍니다. 디자이너가 뭡니까? ‘디자이어’ D-E-S-I... 여하튼 욕심을 다루는 사람 아닙니까? 근데 아무리 봐도 모니터에는 욕심이 안보이더란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회사의 가장 큰 혁명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5, 6년전인가? 디자이너에게 맥북을 지급했던 일, 바로 그겁니다. 그때문에 디자이너의 활동반경이 5m 정도 넓어졌죠, 5m가 대수냐 싶겠지만 그만큼 넓어진 반경안에 욕심의 모든 게 들어옵니다. 지금 회의실에는 욕심과 욕심이 맞붙어 불꽃이 이는데, 디자이너는 내일 광고주 들어갈 돌출 JPG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면 모두 같이 봐야죠, 왜 욕심을 다루는 사람이 현장에서 비껴서 있습니까? 첨예한 전장으로 가세요. 기술이 발달한 지금 사무실을 넘어 세상이라는 현장으로 맥북을 들고 나가세요. 거기서도 JPG는 질리도록 볼 수 있습니다.

아: 디자이너는‘꼴’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꼴’의 아름다움을 외면하면 디자이너로서의 책임방기 입니다.‘끌로 판다’라는 말이 있지요. 끌로 판 높은 완성도의 결과물은 그것의 상황과는 무관한 자체의 가치를 갖는 법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훈련을 통해‘안목’이라는 것이 생깁니다.‘천부적 감각’이란 게 실은 오랜 시간을 통해 쌓은 노하우의 형태에 가깝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아무리 천재라 해도 후다닥 하고 멋진 작품을 내놓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대가들도 부지런히 끌로 파는 법입니다.

차: 침이 참 많이 튀네요, 우린 광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산업’이란 말에 밑줄 쫙! 광고를 접하는 이들은 소수가 아닙니다. 수십만의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밤새 컴퓨터앞에 앉아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직업엔 귀천이 없죠. 휴대폰 생산라인에서 남들보다 부품을 더 빠르고 정확히 조립하는 사람이나, 제품의 이미지와 방향까지 제시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중요한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일의 가치가 같다고 성과의 가치까지 같을까요? 프레임을 봐야지, 프레임 안에서 눈앞의 일만 열심히 한다해서 그 많은 소비자가 감동이나 할까요?

아: 예를 들어도 참, 갖다붙일 걸 붙이세요! 그렇게 대다수의 입맛에 맞춰 하향평준화된 눈으로 작업하니까, 그 따위 결과물만 나오는 것 아닙니까?  디자이너라면 높은 눈으로 미래를 보여줘야지...

차: 아... 그래서 고귀하신 그 취향으로 여태 깐느에서 상 한번 못받으셨군요?

아: 뭐? 이사람이 난 그래도 뉴욕페스티벌 슈퍼메가울트라 파이널리스트까진 가봤어 그것도 못한 주제에...

차: 주제에? 거참 고귀하신 디자이너께서 말도 참‘미래 지양’적으로 잘 하십니다.

사회자: 자, 흥분하지 마시구요, 한정된 지면으로 이정도에서 제가 마무리 하겠습니다. 10여년 전 쯤 친구녀석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모교수의 동양철학 특강을 잠시 본적이 있습니다. 서양의 기능주의와 노자사상을 연관지으며 칠판에 "Form follows contents."라 적는 모습이 지금 기억나는데요, ‘Form’과 ‘Contents’ 중 과연 무엇이 중요한 걸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며 자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진정하시고 회사앞 꽃돼지에 뒷풀이를 준비했으니 가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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