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慣性, inertia] 물체에 가해지는 외부힘의 합력이 0일 때 자신의 운동상태를 지속하는 성질. 질량이 클수록 관성도 크다. 타성(惰性)이라고도 한다.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원래의 속력과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
-네이버 백과사전
마감을 훌쩍 넘겼음을 알리는 홍보팀 황프로의 재촉 문자가 왕림하셨다. 올것이 왔다. 밑천이 다 떨어졌음을 이제 눈치챘는지 액정의 문자 사이로 서걱거림이 느껴진다. 원고를 받으려는이나, 보내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나 지금 이 순간이 고역인 건 마찬가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관성의 의미를 찾아 붙여넣은 후 속절없이 흘러간 120여분. 생각이 멈춰버린 시간에 갇혀버렸다. 이게 다 인터넷 혁명과 클릭질에 길들여진 무기력한 내머리 때문에 생긴 일이다. 뇌라는 신체 기관은 유연성이 뛰어나다 한다. 우리가 흔히 머리가 굳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성인의 뇌조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 항시 변화하는 건 뇌의 속성 그 자체라고 말한다. 나의 굳고 어리석은 두뇌가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이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특정한 자극이나 행동을 자주 받다보면 뇌는 그것을 습관으로 인식해버려 빨리 자신의 뇌를 고착화시켜 버린단다. 쉽게 예를 들어본다. 문학작품을 담당하는 CD와 야동사이트를 담당하는 CD가‘뇌’라는 광고대행사에 각자의 방을 갖고 있다 치자.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야동사이트를 자주 접하다 보면 뇌라는 대행사는 일말의 주저없이 문학담당 CD의 방을 없애고 그 방을 야동담당 CD의 방으로 합쳐버린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절대로 문학담당 CD에게 그 방을 다시 내주지 않는다. 뇌라는 기관의 타성이 외부에서의 변화 욕구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란다. 외부의 자극에 굴복하고 습관화하는 뇌의 경향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생존본능에 기인한다. 몸에 안좋은 걸 알면서도 입이 당분을 섭취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뇌라는 조직에게 있어 습관은 좋던 나쁘던 아무 관계없다. 몸의 주인보다 뇌자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장기다.
습관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알량한 성공의 경험이 몸을 무겁게 한다. 축적해놓은 데이터를 바라보는 본전심리가 끊임없이 되살아 난다. 이게 다 이기적인 뇌가 몸속에서 농간을 부리는 게다. 올 초 대대적인 조직개편의 분위기속에서 난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수치화 되지 않은 다양한 가능성이 마냥 걱정스럽지만 맘속의 한구석에선 변화에 대비가 되어있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영화‘머니볼’의 한장면에서 내가 어느 쪽인가를 생각해본다. 오클랜드 팀의 스카우터가 빌리 빈 단장의 새로운 방식에 반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야구가 숫자나 과학이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우리만의 경험과 직관이 있어. 우린 야구계에서 29년을 몸담아왔어,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저녀석 말을 들으면 안 돼. 야구인들만 아는 설명 못 할 뭔가가 있어. 자네와 우리가 해온 걸 못믿는거야?”그 장면을 본 순간 그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관성에 빠진 뇌라는 녀석이‘입’을 빌어 연명하고자 하는 사탕발림이다. 만약 나의 영역 밖에서 불쑥 들어온 존재가 새로운 방식의 광고를 제안한다면 브래드 피트 보다는 스카우터의 입장에서‘광고인만의 감’을 들먹이지 않았을까? 나 역시 10년, 20년의 경험과 설명할 수 없는 그‘무엇’을 무시할 만큼 용감하지 않다. 그렇기에 역시 그 상황에서 새로운 길로 서슴없이 발을 내밀 수는 없을 듯하다. 어쩌면 이미 난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과 하던대로 움직이려는 관성에 길들여진 뇌의 지배를 받는 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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