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말하는 정의는, 정의(正義 - Justice)가 아니라 정의(定義 - definition)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에 관해 기대했던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낚인셈이다. 정의라는 말을 꺼내가며 글을 풀어가는 이유는 개인사적인 경험과 요즘 부쩍 드는 생각, 이 두가지에 기인한다. 본인은 군생활중 미술에 대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자 미대의 냄새라도 맡아봐야 겠다는 다짐으로 제대후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머리커서 다시 입시공부 하려니 이래 저래 준비할게 많았는데, 미술학원에서 실기공부도 하며 수능시험을 위해 고등학교 이후, 쳐다보지도 않겠다던 과목을 다시 손을 댔다. 물론 수학공부도 다시 해야만했으며 사천만의 베스트셀러인 수학의 정석을 다시 손에 쥐었다. 수학이란 과목은 불구대천의 원수인지라 부담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원비를 부모님께 얻어쓰는 처지라 쪽집게 과외는 받을 엄두조차 못내었으니 어쩔 수 없이 혼자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집합부터 시작해서 한장 한장 차분히 보기로 맘을 먹었는데 과정이 넘어갈 수록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오묘함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땐 대충 넘어가던 앞의 서너장에 모든 답이 들어있는 거 아닐까? 라는 요런 생각말이다. 보통 앞부분은 용어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는 부분으로,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한국어 하는 사람은 쉽게 그러려니 하고 진도 쭉 쭉 빼는 과정이었는데 그 약속의 장안에 방정식을 푸는 기준, 함수를 대하는 기본 약속이 숨어있었다. 흔히 중하게 여겼던 기본예제나 종합문제 풀이를 봐도 그약속의 범위를 절대 넘지 않는다 라는 생각에 이르자, 수학이 재미있어졌다. 내가 수학을 재미있어 하다니?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틈틈히 물리학 입문서도 몇권 읽어봤더니 결국 누군가와의 약속의 범위에서 노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입시로 다시 시작한 수학인지라 두툼한 수학의 정석 책은 그 이후 본적은 없지만 물리학이나 수학뿐 아니라 모든 배움이 ‘약속의 학문’이겠거니 하는 개념이 머리속에 쏙 박혔다. 말과 사물의 뜻을 규정하면서 그외의 오차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진리, 혹은 약속. 그것이 정의에 대한 정의라는 깊은 깨닮음을 얻을 수 있었다.
OT를 받을 때, 킥오프 미팅을 할 때, 첫 회의를 할 때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 받은 브리프를 마치 초안인양 훑어보는 태도가 어느 덧 몸에 배겨있는데, 그안엔 많은 약속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 약속이 미흡하다면 그자리에서 물어보고 확인해가며 회의 참가자 모두의 정의를 세워놓는 과정의 중요성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마치 정석의 첫페이지 넘기듯. 가장 꼼꼼히 체크하고 짚어봐야할 정의의 시작인데, 이 과정에서 애매모호한 판단을 그냥 넘어가 버리면 기준이 모호해지고 그순간부터 자의적인 해석이 중구난방 튀어 나온다. 정의에 대한 합의 없이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일이 진행될 수록 기준은 늘어난다. 3명이 가면 3명의 기준, 10명이 가면 10명의 기준이 나와버린다. 나중엔 10가지 기준을 교통정리하는 과정에 더 시간이 들며, 그정도가 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 그냥 미봉책으로 덮어버리는 경우를 참 많이도 봤다. 비효율적인 일의 진행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다가 결국엔 면피에 급급한 우스운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나 혼자 우스워지면 그만이지만 그 상처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크고 작은 외상으로 남게된다. 몰라서 그러는 이 없겠지만, 우린 너무나 쉽게 ‘현실적으로...’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해버리는 게을러 빠진 마음의 또 다른 주인을 키워왔다. 진정한 위로는 현실의 격차를 적당히 위무하는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모든 걸 뒤집어 버리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다이내믹한 성격의 그것이다. 알면서 못하는 건 좀 억울하지 않은가? 정의의 중요성! 이건 부족하기 짝이 없는 박아트의 광고적 사춘기에 들기 시작한 뒤늦은 깨달음이다. 기라성같은 동료들에게 어디 가르치려 드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면 서슴없이 말해주기 바란다. 배우려 들 준비도 되어있는 것 같다.
OT를 받을 때, 킥오프 미팅을 할 때, 첫 회의를 할 때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 받은 브리프를 마치 초안인양 훑어보는 태도가 어느 덧 몸에 배겨있는데, 그안엔 많은 약속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 약속이 미흡하다면 그자리에서 물어보고 확인해가며 회의 참가자 모두의 정의를 세워놓는 과정의 중요성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마치 정석의 첫페이지 넘기듯. 가장 꼼꼼히 체크하고 짚어봐야할 정의의 시작인데, 이 과정에서 애매모호한 판단을 그냥 넘어가 버리면 기준이 모호해지고 그순간부터 자의적인 해석이 중구난방 튀어 나온다. 정의에 대한 합의 없이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일이 진행될 수록 기준은 늘어난다. 3명이 가면 3명의 기준, 10명이 가면 10명의 기준이 나와버린다. 나중엔 10가지 기준을 교통정리하는 과정에 더 시간이 들며, 그정도가 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 그냥 미봉책으로 덮어버리는 경우를 참 많이도 봤다. 비효율적인 일의 진행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다가 결국엔 면피에 급급한 우스운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나 혼자 우스워지면 그만이지만 그 상처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크고 작은 외상으로 남게된다. 몰라서 그러는 이 없겠지만, 우린 너무나 쉽게 ‘현실적으로...’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해버리는 게을러 빠진 마음의 또 다른 주인을 키워왔다. 진정한 위로는 현실의 격차를 적당히 위무하는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모든 걸 뒤집어 버리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다이내믹한 성격의 그것이다. 알면서 못하는 건 좀 억울하지 않은가? 정의의 중요성! 이건 부족하기 짝이 없는 박아트의 광고적 사춘기에 들기 시작한 뒤늦은 깨달음이다. 기라성같은 동료들에게 어디 가르치려 드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면 서슴없이 말해주기 바란다. 배우려 들 준비도 되어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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