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괄식과 미괄식을 놓고 보면 두괄식은 좀 더 과감하고 고차원적 정신능력을 가진 이들의 글쓰기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막판 반전의 유혹을 떨치고 '난 이렇게 생각하오..!'라고 화두에 던지는 과감한 그들의 일갈. 그리고 그 논조를 유지하며 나아가는 한자, 한자의 일관성. 매달 원고의 반을 채우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헤매기 일쑤인 나같은 이에게 있어 글의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은 통괘함 그 자체다.
지난달에는 참다못해 중간에 원고를 카피라이터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다. 재미있게 읽는 척 하더니 한마디 보탠다는 것이 " 그런데, 이글을 쓰는 목적이 뭐요?" 란다. 그러게? 그건 바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글은 삶의 또다른 투영이라더니, 큰 이야기를 하다가 신변잡기로 흘러 결국엔 그럴 듯한 책의 한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글은 머물곳 모르는 몽유병 환자의 갈지자 행보 같다. 목적과 일관성이란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요즘 사는 모양새중 몇개를 들어보자. 부지런하지도 않던 독서생활에 제동이 걸렸다. 책익기에 대한 글을 보다가, 자기화하지 못한 독서는 결국 문장의 습득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장에 목이 탁 걸려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한달에 몇권씩 읽자. 이렇게 정해놓고 덤벼든 독서 습관은 읽어제꼈다는 책의 제목만이 완독한 책의 권수만큼 쌓여있을 뿐이다. 그동안의 노력은 내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딱 멈춰버린 방향성이 결여된 어린독서. 교양이라 함은 단순 지식의 누적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똑바로 섰을 때 비로서 생기는 거란다. 목적이 결여되면 일관성을 상실하게 되고 일관성이 없으며 그 순간부터 내가 말하고 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최근 우리 큰애의 유치원을 본의 아니게 옮겨야 할 일이 생겼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믿으며 선행학습따위는 별관심도 없다가 아내의 손에 이끌려 소위 설명회라는 것을 따라갔다. 설명회라는 걸 듣다보니 정작 흔들리고 고민하는 건 부모들이더란 말씀. 시설이 좋으니, 선생이 훌륭해서, 프로그램이 알차서... 흔들리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이 유치원 어떠냐고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아드님의 말씀은 " 좋아요 그런데 거기 가면 맘껏 놀 수 있는 거죠?" 란다. 부모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일관성을 갖는 것이 훈육의 제 일 원칙일진대 그순간 머리속엔 일관성이란 없다. 이래서 아이는 부모들의 영원한 스승이라 하는 게다.
아이디어의 세상에 쓸모없는 생각이란 없다. 기준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모든 콩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열성인자들이다. 종의 번식을 위해서는 빨리 콩깍지를 뚫고 나와 땅에 떨어져 종자를 널리 퍼뜨리려는 콩의 본능에 부합하지 않은 실패작들이지만 먹기 편하다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재배되어 온 것이다. 목적성의 유무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의미가 부여된다. 광고 회의를 하다보면 목적을 잊고 맹목적으로 달리는 경우가 있다. 회의는 거듭할 수록 진행과정은 더 명확해지고 간결해야 하지만 방향을 잡지 못한채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필요이상으로 넘쳐나는 정보에 무거워진 발걸음은 생각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근데 이광고의 목적이 뭐야?" 누군가가 바보같지만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차분하게 테이프를 뒤로 감고 처음 브리프를 받는 그순간으로 돌아간다. 그 순간 조금이라도 더 고민했던 이들이 던지는 광고의 목적을 되짚어 본다면 생각의 군살이 조금씩 걷히고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이 드러난다.
그제서야 조금 가벼워 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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