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축구팀 박주영 선수의 기도 세리머니를 보고 바로 들었던 생각은 ‘과연 박프로도 욕을 잘할까?’ 였다. 이런 쓸 데 없는 의문의 시작은 모두 25년전 나의 어설픈 백태클에 기인한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약 열댓명의 시커먼 소년들과 동네의 노는 아저씨처럼 보이는 코치 선생으로 구성된 축구부가 근근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팀은 22명 이상의 엔트리가 구성되지 않는지라, 그날 그날 운동장에서 볼을 차던 비(非)축구부원들 중 나머지를 채워 게임을 하곤 했었다. 내 인생에 트라우마를 주었던 오래전 그날, 나는 비(非)축구부원의 자격으로 시커먼 축구부원들과 함께 어울려 공을 차게 되었는데, 어린 나를 굉장히 놀라게 했던 것은 선수들의 발재간이 아니라 입재간-쌍욕이라 칭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난생 처음 들어본 욕의 향연-이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신체적 접촉이 많은 구기 종목일 수록 동물적 본능의 충돌에 가깝기 때문에 심리전같은 개념으로 상대를 도발하거나 제압하는 차원에서 그런 욕을 해댄 것 같다. 하지만 난 선수가 아니었지 않은가? 분하게도 당시 그 팀은 전술이나 기술을 테스트 한 게 아니라, 우리를 상대로 ‘욕설’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욕을 많이 먹었던 그날의 충격은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그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욕먹으며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나의 왼발이 우리 초등학교 ‘캡짱’ (80년대식 표현)이자 축구팀 주장이었던 6학년 형님에게 무모한 백태클을 시도하던 그 순간이었다. 그 다음 컷은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물옥잠이 흐드러지게 수 놓아진 학교 뒷마당 연못옆의 식물원에서 선수들에게 나홀로 둘러 쌓여 경기때는 듣지 못했던 ‘욕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내 모습이다. 간신히 주먹세례는 피했지만, 그날 이후로 씨름부나 유도부의 막연한 위압감보다 축구부의 현실감있는 공포를 더욱 두려워 하게 되어, 몸보다는 눈으로 즐기는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감히 주장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축구선수는 마테라치이며 지단은 ‘욕설’이라는 거대 악에 맞서 싸운 세상 으뜸 가는 용자였노라고 말이다.
욕 잘하는 축구선수에 대한 기억말고도 4년마다 찾아오는 월드컵을 알리는 것들은 많다. 4년마다 한번 씩 ON AIR한다는 아이스 콘 광고, 응원단을 훑는 카메라 시선을 따라 늘어선 미녀들의 어색한 연기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부터 붉은셔츠의 물결까지 월드컵의 이름이 붙은 모든 현상은 폭풍같이 우리를 휘몰아치고 간다. ‘월드컵문화’라 쓰고 ‘월드컵산업’이라 읽는 숨겨져 있는 자본의 논리가 열정과 함성까지 사버리는 세상에 있자니 이번 월드컵 만큼은 예전보다 차분하게 즐기고 싶었다. 게다가 지자체 선거라는 냉탕을 나와 바로 열탕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극단적이라 마치 거대한 힘이 우릴 이리 저리 흔들어 놓는 기분까지 드니 말이다. 연일 떠들어 대는 월드컵 이슈에 시큰둥해진 아내와 나는 이번엔 쿨하게 월드컵을 맞이 하기로 했다. 선수들 하나 하나의 움직임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팬의 입장으로 ‘즐기자고’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기 당일, 우리의 골이 터지는 순간, 나의 함성은 터져버렸고, 곤한 잠을 자던 둘째 녀석의 울음도 터져 버린다.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에 내몸이 반응하고 얼굴은 찡그리고, 쿨하자던 다짐은 온데 간데 없이 그만 뜨거워져 버린 가슴이 문제다. 개막한지 일주일도 채 안된 지금 반 이상을 거실 소파에서 잠들고 깨었으며, ‘그리스전 일본 네티즌 반응’을 몇번째 보며 혼자 웃음짓고 있다. 몸과 몸의 접전, 욕과 거침 숨소리가 오가는 전장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빠져버린 이래 저래 뜨거운 여름을 보낼 것 같은 201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