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토요일을 맞아 음악프로를 무료하게 보던 나는 화면속에서 바지를 벗고 이리 저리 날뛰는 이들을 보며 말없이 입을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인디밴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무대위에 있던 멤버들이 공연 도중 갑자기 옷을 벗어 제껴 카메라와 당당히 맞짱을 뜬 것이다. 발갛게 달아오른 카메라는 급히 방청석을 바라 보았고, 아연실색한 방청객들의 표정은 무대위 상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희대의 방송 사고를 목격한 몇천만명중의 하나가 되었다. 철없는 밴드로 인해 시작된 파장은 해당 프로그램의 폐지로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홍대앞 클럽은 중년의 아저씨에게도 가볼만한 요상한 장소로 각광받았으며, 남쪽의 뜨거운 논란에 북한 중앙방송은 ‘천하의 개쌍놈’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 해 여름 제대로 시끄러웠던 일명 ‘럭스-카우치사건’을 떠올리며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과연 무얼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뇌를 간지럽히며 내맘으 떠나지 않고 있다.
멤버 한명이 입고 있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The clash-Kamikaze”란 문구의 T셔츠는 친일적 행위로 오해되고 퇴폐적인 홍대 클럽을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당시 서울시의 반응을 보면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은 RUX의 펑크(Punk) 문화에 대한 설명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받아들일 맘도 없어 보였다. 결론적으로 그 사건은 한 밴드의 어이없는 돌출행동과 음악을 문화적 가치가 아닌 쉽게 소비될 상품으로만 판단했던 이들이 만든 폭발적 연쇄반응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차분한 논조로 문화면에서 다루기 시작할 즈음에는 인디문화를 제대로 보자는 움직임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생각만으로도 불쾌해질 수 있는 당시 그들의 비주얼 폭력 - 인간자체를 보고 쇼크 받은 보기 드문사례-에 온 국민은 한 목소리로 법적 책임을 물것을 요구했고. 그들 역시 찍소리 못하고 받아들임으로 그네들의 행위에 대한 응징은 그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이 커진 진짜 잘못은, 럭스와 카우치가 자신들의 행위가 미칠 파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무지에 있다고 혹자들은 이야기 한다. 전국으로 생중계 되는 공중파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던 무개념은 일이 커지자 자신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왔으며 잔뜩 겁을 먹은 후에야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납작 엎드려 사건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비겁함으로 변한다. 그것은 행위에 대한 책임은 생각지 않은 유치함으로 똘똘뭉친 ‘똘기’일 뿐이다. 몇 년전 신제품 런칭 광고작업을 하면서 일련번호 한글자를 틀린 채 출고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불려가서 설명하고 경위서까지 쓰면서 느꼈던 압박의 크기는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뭘 했는지 알아도 그것의 파급효과는 헤아릴 수 없는 진공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실수라곤 하지만 고스란히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수없이 자책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몇년전 느꼈던 그 압박이 그리 컷으니 온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던지고 그에 대한 반응을 능숙하게 대처하는 이들의 내공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똘기가 가져올 결과를 총기있게 예측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녀야 한다. 자고로 겁대가리는 아무때나 상실해선 안된다. 똘기라는 것은 뭔가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겐 각광받고 지켜져야할 ‘덕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똘기만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환상과 모험의 광고월드는 없다. 똘기는 무뎌졌지만 그래도 어느 방향으론 나아갈 수 있는 ‘총기’가 필요한 연차가 되어간다. 그런면에서 회의 시간에 개념없이 던지는 나의 똘기를 제어해주고 길들여줄 훌륭한 총기를 가진 선배들은 내 광고인생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분명하다.
멤버 한명이 입고 있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The clash-Kamikaze”란 문구의 T셔츠는 친일적 행위로 오해되고 퇴폐적인 홍대 클럽을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당시 서울시의 반응을 보면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은 RUX의 펑크(Punk) 문화에 대한 설명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받아들일 맘도 없어 보였다. 결론적으로 그 사건은 한 밴드의 어이없는 돌출행동과 음악을 문화적 가치가 아닌 쉽게 소비될 상품으로만 판단했던 이들이 만든 폭발적 연쇄반응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차분한 논조로 문화면에서 다루기 시작할 즈음에는 인디문화를 제대로 보자는 움직임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생각만으로도 불쾌해질 수 있는 당시 그들의 비주얼 폭력 - 인간자체를 보고 쇼크 받은 보기 드문사례-에 온 국민은 한 목소리로 법적 책임을 물것을 요구했고. 그들 역시 찍소리 못하고 받아들임으로 그네들의 행위에 대한 응징은 그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이 커진 진짜 잘못은, 럭스와 카우치가 자신들의 행위가 미칠 파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무지에 있다고 혹자들은 이야기 한다. 전국으로 생중계 되는 공중파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던 무개념은 일이 커지자 자신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왔으며 잔뜩 겁을 먹은 후에야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납작 엎드려 사건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비겁함으로 변한다. 그것은 행위에 대한 책임은 생각지 않은 유치함으로 똘똘뭉친 ‘똘기’일 뿐이다. 몇 년전 신제품 런칭 광고작업을 하면서 일련번호 한글자를 틀린 채 출고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불려가서 설명하고 경위서까지 쓰면서 느꼈던 압박의 크기는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뭘 했는지 알아도 그것의 파급효과는 헤아릴 수 없는 진공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실수라곤 하지만 고스란히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수없이 자책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몇년전 느꼈던 그 압박이 그리 컷으니 온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던지고 그에 대한 반응을 능숙하게 대처하는 이들의 내공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똘기가 가져올 결과를 총기있게 예측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녀야 한다. 자고로 겁대가리는 아무때나 상실해선 안된다. 똘기라는 것은 뭔가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겐 각광받고 지켜져야할 ‘덕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똘기만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환상과 모험의 광고월드는 없다. 똘기는 무뎌졌지만 그래도 어느 방향으론 나아갈 수 있는 ‘총기’가 필요한 연차가 되어간다. 그런면에서 회의 시간에 개념없이 던지는 나의 똘기를 제어해주고 길들여줄 훌륭한 총기를 가진 선배들은 내 광고인생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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