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탄생' 중에서
1. <위생문답> 용비술에 대한 문의
문:20세 처녀이온데, 코가 얕아서 남모르는 기관을 하던 중 반가웁게도 코를 높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곧 실행하려 하오나 동무의 말을 들으니 시일을 경과하면 코가 삐뚤어진다는 중 코 살색이 푸르다는 둥 늙으면 흉해서 볼 수가 없다는 둥 여러가지 말을 하니 얼른 실행키도 무섭습니다. 그리고 음성도 이상해진다 하니 그게 정말일까요? - 용산 일독자
답:천연적으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조선중앙일보,19355.1)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중에서
'히틀러의 아이들' 중에서
1.당시 17세였던 즈봉코 슈프링거는 부모가 생일 선물로 준 자전거를 정부가 징발해 가자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뺏기지 않을까 궁리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 자건거가 정부에 왜, 무슨 목적으로 필요하단 말인가? 누가 내 아름답고도 멋진 흑색 여행용 자전거를 타겠다는 건가? 조국을 지키는 일에 자전거가 어떤 쓰임새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즈봉코는 명령에 따랐다. 그는 이듬해 징집됐다. “자전거가 그 주인보다 일 년 먼저 전쟁에 투입된 셈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2.1933년 분서- 5월 10일 금서라 칭하던 책들을 불사르던 나치의 청년당원들: 하이리히 하이머는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워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8년후 나치는 유대인 학살로 이를 증명한다.
3.전쟁준비를 시키며 고된 노동을 강요하며 삽을 "평화의 총'이라 말하던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심플플랜' 중에서...
1.'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은 환상일뿐이다
'서울은 깊다' 중에서...
1.서울시가 노인들을 탑골공원에서 몰아내기 위해 경운동에 서울노인복지센터라는 새쉼터를 마련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그곳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펴느 종묘 쪽으로 이동하여 노인의 공간을 확장시켰다. 노인들이 탑골공원 주변을 찾는 것은 이곳이 단순히 ‘접근이 용이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곳’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일대에 그들의 ‘왕년’이 함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2.오늘날 ‘권력’이라는 단어는 여러 함의를 가진 말로 쓰이고 있지만, 도시 공간과 관련해서는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 경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평면 공간은 책상 위의 1/3평에 불과하다. 거실 가구의 위치는 물론 책상 위치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내 아내가 나보다는 권력이 조금 더 많은 셈인데, 대다수 한국인 가정이 그렇게 공간 권력을 배분하고 있을 터이다.
3.한참의 시간이 지나오면서 그러한 시도는 때로는 실패라 불리면서 그 사실을 덮어버리고 으폐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 역시 우리의 삶이 이어져온 터전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찬란한 것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기에 급급한 지금 다시 한 번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위한 일일 것이다.
4.이방원은 정도전이 한양 공간 도처에 새겨놓은 꿈을 다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모욕할 수는 있어도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는 법. 장소 위에 새겨진 역사는 누적될 뿐 대체되지는 않는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집을 사복시-마구간으로 바꿔버렸고 신덕왕후 묘의 신장석을 광교 교각의 초석으로 삼아버렸지만, 장소가 남긴 흔적은 어쨌든 이방원보다 훨씬 오래 살아 지금껏 남아 있다.
5.종로에서 청량리를 거쳐 중랑교 음흉한 관리자를 상대하는 일 등등, 그 무렵 종로에서 청량리를 거쳐 중랑교 방면으로 가는 버스 차장들은 정류장에 차가 서자마자 내려서서는 “청량리 중랑교 가요”를 외쳤는데, 이소리가 그네들의 고달픈 삶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죽는게 나아요”로 들리곤 했다.
6.누차 반복하는 말이지만,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설사 그 서계자가 황제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거림낌 없이 그 뜻ㅇ르 거스르곤 한다. 사람들은 황제가 전차에 부여한 복합적 용도와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여를 닮았든 어쨌든 사람들은 기꺼이 다투어 전차를 탔고, 그 주변에 몰려들어 환성을 질렀다.
7.거지는 빈곤화의 산물이 아니라 격차 확대의 산물이다. 방산(가산)은 영조의 준천공사 이후 생긴 산이다. 기존의 거지들은 다리 밑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산 근처에 굴을 파서 사는 거지들을 땅거지라 하였다. 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왕은 이들의 생계수단을 도모하며 뱀과 미꾸라지를 팔 수 있는 권리를 주었는데, (이것이 뱀탕의 기원) 이것이 변하여 땅거지는 땅꾼-뱀을 잡는 사람으로 변형되었다. 아울러 꼭지란 말은 거지두목을 일컫는 말인데, 꼭지들이 회합하여 왕을 추대하여 꼭지딴이라는 말이 생겼다.
8.인재의 통로가 막히게 되면 (누군가가 독점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9.발효,증류,혼합주 이외의 것은 조선시대때 술로 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소주는 알코희석식 소주라하여 술주자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안동소주(증류수)의 주자는 술주자를 쓸 수 있다.
10. 월남 이상재는 일제 강점기 때 강연할 때마다 그를 감시하러 온 순사나 형사를 멀찌감치 쳐다보며 늘 "저기 개 나리 꽃이 피었네..."로 시작했다고 한다.
100년의 난제-푸앵카레의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1. 치거박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때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그의 모습에서 나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 올랐습니다. 모차르트가 초기 오페라 작품을 발표하는 장면 말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황제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음악은 멋진데, 음표 수가 너무 많다’ 그러자 모차르트는 황제에게 “어떤 음표가 남았습니까? 정확히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따졌습니다. 자신의 작품에는 부족한 음표도 없지만 쓸데없는 음표도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페렐만과 논문 이야기를 했을 때도 꼭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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