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란 영화 좋아하는 분들 있을게다. SF 영화의 한 전형을 세웠던 명작. 어린시절 뒷통수 한방을 맞은 듯한 충격으로 가슴을 멍하게 만드었던 그 영화 말이다. 하지만 내 맘 속에 축복으로 자리잡은 ‘블례이드러너’ 앞에는 슬프게도 저주받은 걸작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개봉하던 해에 스필버그의 ET와 당당히 맞짱을 떠서 훌륭하게 망해버렸으니 뛰어난 완성도와 심오한 깊이에도 불구, 저주의 이름표를 늘 달고 다니는 ‘블레이드 러너’ - 이 후 십수 번씩 돌려보는 영화는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감흥으로 전해온다.
저주받은 아이디어가 태어나기까지는 몇가지 공정을 거쳐야 한다. 첫번째 - 우선 재료 자체가 훌륭해서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며 절대 채택되어선 안된다. 탈락의 과정이 아쉬우면 아쉬울수록 순도는 높아진다. 두번째 - 자의건 타의건 브랜드 네임만 살짝 바뀌어 다시 회의 석상에 돌아와야 한다. 이건 필수과정이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처럼 한층 강화된 삐딱함과 저주받은 아이디어 본연의 불굴의 정신으로 우리곁에 돌아와 논란을 야기시켜야 한다.
세번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역시 재활용은 안된다 라는 식의 동료들 반응이 첨가되어 저주받은 아이디어로서의 불꽃 같은 삶을 마감해야 한다. 이와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다른 경쟁사의 히트 광고나 해외의 기가막힌 광고의 모습으로 다시 환생하면 비로소 ‘저주받은 아이디어’완성이다! 선배나 동료에게 아쉬움을 호소해도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나? 라는 대답을 이끌어 낸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러나 보관상 주의할 점이 하나 있으니 명심할 것, 중세 연금술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라리살 시다 (AD 987~?) 는 저주받은 생각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화합반응으로 인해 성질이 변하게 되어, 스스로 저주를 푼다고 했다. 이 이론은 훗날 명석한 광고인들에 의해 ‘저주받은 걸작’이 쌓이고 쌓이면 ‘불후의 명작’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공식으로 증명되었다. 이는 오늘 날 우리가 밤을 낮처럼 밝히고, 발칙하고 독창적인 수많은 썸네일을 만들어야 하는 근거로 남아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라리살 시다 (AD 987~?) : 네이버 검색 불가. 거꾸로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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